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종(조선)/특이한 기록들 (문단 편집) == 세자빈 문제 == [[문종(조선)|세자]]는 첫 번째 세자빈 [[휘빈 김씨]]를 멀리하고 효동과 덕금이라는 [[궁녀]]들을 더 총애하였다. 야사에 휘빈 김씨가 박색이었다고 한다. 휘빈 김씨는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압승(壓勝)이라는 주술을 쓰다가 발각되어 폐위되었다.[* 이 주술이라는 것도 보통 주술 수준이 아니라, 궁녀들의 [[신발]]을 잘라 태운 재를 술에 타 세자(문종)에게 먹이려 하거나, 뱀이 교접하여 나오는 [[정액(체액)|정기]]를 수건으로 닦아 지니고 다니는 등 선을 심각하게 넘은 것이었다.] 세종대왕은 두 번째 세자빈을 뽑을 때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[[순빈 봉씨]]를 간택했다. 하지만 순빈 봉씨도 세자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. [[술]]을 좋아해 무단으로 궁중에 술을 반입해 즐겼으며, 성격도 난폭하기 짝이 없는데다 [[질투]]까지 심해 궁녀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했다. 세자는 순빈 봉씨의 투기가 [[한나라]] [[고황후 여씨|여후]] 못지 않다고 하였다. 처음엔 세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던 순빈 봉씨는 그렇게 되지 않자 궁녀와 동성애를 하는 사건까지 일으켜 폐위되었다. 세 번째 세자빈 [[현덕왕후|권씨]]는 행동에 흠이 없었으나, 단명하였다. [[단종(조선)|세손]]을 낳고 다음날 산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. 문종은 이후 정실 부인을 들이지 않았다. 이 때문에 문종은 즉위 기간 동안 중전이 없던 유일한 조선 국왕이다. 그리고 이 결정이 결국 [[계유정난]]을 막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